“CCTV 없어 은행직원,전과자까지 용의자만 5000명”…20년째 미궁 ‘대전 권총강도’ (사진)

“CCTV 없어 은행직원,전과자까지 용의자만 5000명”…20년째 미궁 ‘대전 권총강도’ (사진)

KBS

대전중부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은 최근 폐쇄회로TV(CCTV)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심야시간대 건설현장을 돌며 값비싼 전선(구리)을 상습적으로 훔쳐온 A씨(47)를 CCTV 분석 끝에 검거해서다. A씨는 전동킥보드와 화물차 등을 이용해 28차례나 전선을 훔치다 지난달 26일 붙잡혔다. 절도 현장과 도주로 곳곳에 설치된 CCTV에는 그의 범행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고 밝혔다.

A씨 검거 소식을 접한 한 형사는 “그때 폐쇄회로TV(CCTV)만 있었으면 곧바로 잡았을텐데”라며 아쉬워했다. 2001년 12월 21일 발생한 ‘대전 국민은행 권총강도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이었다. 그는 “수사본부를 차리고 100명이 넘는 형사가 달라붙었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며 “이 생활(경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꼭 이 사건이 해결되는 걸 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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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은행 건물 지하 주차장에는 CCTV가 아예 없었고 도로마다 설치된 방범용 CCTV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는 점을 뼈아프게 생각했다. 백주대낮에 도심 한복판에서 총성과 함께 은행 직원이 목숨을 잃고 현금 수송차량이 털렸는데도 20년째 미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01년을 열흘 남긴 12월 21일 오전 10시쯤. 대전시 서구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주차장으로 현금 6억원을 실은 승합차(이스타나)가 들어섰다. 차 안에는 국민은행 용전지점 김모 과장(당시 45세)과 청원경찰, 운전기사 등 3명이 타고 있었다. 승합차에는 1만원권 3만장(3억원)이 담긴 가방 2개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김 과장 일행이 승합차에서 내려 현금가방을 손수레에 올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주차장 구석에 있던 검정색 그랜저XG 차량이 승합차의 뒤쪽을 가로막았다.

곧바로 차량에서 내린 복면의 남성은 “손들어! 꼼짝 마!”라고 소리치며 권총을 발사했다. 당시 청원경찰과 운전기사는 승합차 뒤로 몸을 피했지만 김 과장은 남성이 쏜 총알 두 발을 맞고 쓰러졌다. 김 과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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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과장이 쓰러진 사이 남성은 수레 위에 놓여 있던 가방 두 개 중 한 개를 그랜저 차량에 싣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불과 4~5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범인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경찰이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차단했지만, 도주를 막지는 못했다. 범행에 이용된 그랜저 차량만 사건 발생 9시간 만인 오후 7시10분쯤 범행 현장에서 130m쯤 떨어진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됐다. 같은 달 1일 경기도 수원에서 도난당한 차량이었다. 당시 목격자들은 “남성 두 명이 흰색 차로 바꿔 타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권총을 이용한 현금 강도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리고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범인들이 현금수송 차량의 이동 경로와 시간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은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범행으로 추정했다.

범행 수법이 대담한 데다 권총까지 사용한 범죄로 동종 전과자도 용의 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범행 당시 남성이 복면을 쓴 상태여서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는 폐쇄회로TV(CCTV)나 차량용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이라 목격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단서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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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범인을 3명으로 추정했다. 지하주차장에서 현금을 강탈한 2명과 또 다른 1명이 함께 움직인 것으로 판단했다. 범행에 이용된 3.8구경 권총은 두 달 전 대전에서 순찰 중 피습을 당한 경찰관이 분실한 것.

사건 직후 목격자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20~30대 남성들이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와 선팅지를 구입했다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실제 범인들이 놓고 달아난 차량에는 선팅지가 3중으로 붙어 있었다. 외부에서 안을 보지 못하도록 감추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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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수배 전단을 제작했다. 나이는 30대와 20대, 키는 170~180㎝와 170~172㎝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의 몽타주가 담긴 전단 13만5000장을 전국에 뿌렸다.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1000만원이던 현상금도 2000만원으로 올라갔다.

경찰은 은행 직원과 경비업체 관계자, 유사 범행 전과자 등을 모조리 수사했다. 권총을 사람에게 정확하게 쏜 것으로 미뤄 퇴직한 군인이나 경찰까지 줄줄이 불려 나왔다. 비디오대여점에서 경찰관 피습 장면이 담긴 영화를 빌린 사람도 조사했다. 당시 경찰에 용의 선상에 올린 사람만 5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범행 전 수원~대전을 오간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권까지 수거해 지문도 감식했다. 범행에 이용된 차량이 경기도 수원에서 도난당한 차량이어서다. 하지만 누구에게서도 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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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도 제자리에 머물던 수사는 술자리에서 자신이 범인의 지인이라고 떠드는 20대 남성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사건 발생 8개월 만인 2002년 8월 송모씨(당시 21세) 등 3명의 용의자를 검거했다. 이들 가운데는 현역 군인도 포함됐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범행 동기와 권총 입수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수사를 통해 송씨가 사건 발생 두 달 전 권총을 구입했고 수원에서 그랜저 승용차도 훔쳤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경찰은 “(송씨 등이) 오래전부터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현금수송 차량 운행 시간과 보상 상태를 확인했고, 범행 당일 지하주차장에 숨어 있다가 현금 수송차를 습격했다”며 이들의 범행을 확신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경찰이 확보한 건 자백이 전부였다. 검거된 3명 중 두 명은 일관되게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으며, 검거 초기 범행을 자백했던 송씨마저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이 훔쳤다는 현금이나 범행에 이용한 권총의 소재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송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당시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호소했다. 법원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송씨 등은 모두 풀려났다고 했다.

연합뉴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은 “아쉬움이 많은 사건이다.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국에는 검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발생 1년 3개월 만인 2003년 3월 말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애초 이 사건은 2016년 12월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에서 여전히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이 사건 관련 자료는 1t 트럭 한 대 분량에 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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